언론사 파업에 대한 생각
인지상정,
오늘의 언론사 동반 파업을 바라보는 심경이다. 2009년, 중앙대학교 본부측은 박범훈 당시 총장을 풍자한 만평이 실린 <중앙문화 58호>를 수거해 폐기처분하고 다음 학기 교지 발행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발행인인 총장을 비판한 것이 불손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학생들이 반발하고, 사건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자 학교측은 중앙문화와 “중앙문화를 자치언론으로 보장하고, 등록금 고지서에 교지대금 항목을 추가하여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납부하도록 하겠다”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2011년 초, 이를 어겼다. 합의되었던 교지 예산 항목은 등록금 고지서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항의하러 간 필자에게 돌아온 것은 “담당 보직교수가 바뀌었다, 나는 그런 약속을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예산안은 이미 통과되어서 수정하는 건 불가하다”는 답변이었고 자리를 뜰 무렵 교직원에게 “자꾸 문제를 일으키니 학교의 웃 어르신들이 불편해 한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책 논리와 정치 논리를 구분할 수 있습니까?”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미디어 정책론 수업시간에 이렇게 물은 적 있다. 메이저 신문, 방송사에 비하면 그 영향력과 존재감은 ‘귀여운 수준’이지만 필자가 학내 언론사에서 겪은 일을 돌이켜 볼 때, 학내에서나 사회에서나 비판적인 언론을 입막음하려는 권력의 논리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객관적인 정책 논리의 외양을 입고 등장한 ‘정치 논리’다. 최소한의 형식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지킨 뒤, 정당한 의사결정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논리와 정책 논리는 분석적으로 구분가능하나, 현실의 차원에서는 구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 또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 육성’ 등의 ‘정책 논리’를 앞세웠으나, 많은 사람들이 2008년 2월 방통위 설치법이 통과될 무렵부터 우려했듯 실상은 ‘정치 논리’로 점철되어 있었다. KBS의 신태섭 이사와 정연주 사장은 후일 ‘무죄 판결’을 받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자리에서 쫒겨나야 했고, 그 뒤를 이어 낙하산을 타고 ‘MB 정권 프렌들리’한 인사들이 줄줄이 내려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에도 친 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방송계에 포진한 적이 없지 않으나, 그 강도와 밀어붙이기식 의사결정을 고려할 때 이명박 정부의 인사 정책에는 ‘정치 논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권력 보전 외에 어떤 비전과 가치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정치적 비전과 가치가 담기지 않은 정책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양자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사잇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방송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하려는 정책적 노력은 미디어와 이를 규제, 감시하는 외부 기관과의 관계설정에서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국가로부터 독립하면서 국가의 지원과 규제를 받아야 한다. 또한 시장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시장(시청률)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결국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채로 완전히 ‘독립’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매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이런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를 수는 없는 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해 독립성을 가능한 보장하는 것이 이를 해결하는 열쇠다. 방송의 통제기구인 방통위와 이사회의 구성에서 정치 권력이 개입할 여지를 축소함과 동시에 어느 한 쪽으로 위원 숫자가 치우치지 않도록 이를 바꾸어야 한다. 연일 계속되는 방송사 파업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여권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뇌물 수수 파문으로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게 된 바로 지금이 적절한 시점임은 두말 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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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서평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새 역사교과서를 위한 모임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전전 시절을 추억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깊이 있는 저작을 출판했으면서도 대처와 블레어를 칭송하고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자고 한다. 우경화를 우려하면서도 일본 국내의 정체를 일소해줄 ‘가미카제’가 불어오길 바란다. 일본의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가 쓴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서로 상충될 법한 주장이 한 사람의 책 속에 군데군데 섞여 들어가 있다.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모순 속에서도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정체되어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 위기와 정체의 원인은 ‘정치’일 수도 있고, ‘경제’일 수도 있으나 현재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다. 이를 타개할 만한 ‘바람’이 불어야 하고, 이를 일으킬 카리스마적인 정치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교육제도는 ‘혁신’을 추진할 만한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며, 전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적 교육제도와 전전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사이의 모순이 심각하다. 따라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이 해야 할 것은 첫 번째로 사회의 기본 토대인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 개혁이요. 여기서 성장한 정치가들이 해야 할 과제가 두 번째 혁신, ‘동아시아 공동체’다.
모리시마의 방법, ‘인구사관’
모리시마의 문제진단과 대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기 전 그의 ‘방법’을 보면, 그가 사회 인식의 기초로 삼는 것은 '인구'다. 그는 사회는 토대와 상부구조로 구성된 하나의 구축물이라고 파악하는 사회구성체론자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모리시마가 토대로 보는 것은 ‘인간’이다. 경제는 인간이라는 토대 위에 지어진 또 하나의 상부구조다. 모리시마는 자신의 방법을 ‘인구사관’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면 그 인간에게서 그는 무엇을 보는가? ‘인간의 질’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이야기하나 뒤에 가면 그는 베버, 뒤르켐, 파레토 등 고전사회학자들에 기대어 인간의 행위 유형을 구분한다. 행위에 내재된 가치체계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모리시마는 각 시기에 어떤 인구집단이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때 그 인구집단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교육’이다. 인구집단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통념의 사회과학화
이러한 관점에 기대어 그는 일본 '인구'의 양과 질을 분석한다. 출생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가 '양적 측면'의 몰락이며, 전후 미국의 가치관이 왜곡된 형태로 이식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가 전전의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편입될 때 겪는 분열이 '질적 측면'의 몰락 원인이라고 본다. 이런 분석에는 십분 동의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 뒷 부분에서 그가 젊은 세대의 문제점으로 꼽는 “사랑을 모른다”, “고차원적인 것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분석의 결과라기보다 모리시마 그 자신이 젊은 세대를 자신이 속한 세대의 가치관에 의거해서 - 마치 저널리즘에서 선정적으로 젊은 세대의 '문란함'을 보도하듯 - 평면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일본 인구의 양적, 질적 변화와 그가 언급하는 젊은 세대의 문제점 사이의 연관관계를 제시하지 않아 설명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병렬적이다.
모리시마는 당시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금융과 산업의 위기 원인에 대해서도 일본인의 가치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은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토지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산업 부문의 문제도 '친우 클럽'의 문제와 정, 관, 재계의 네트워크가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인데, 문화를 단위로 일본 혹은 아시아의 특수성을 도출해내는 것은 서양을 거울 삼아 반사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설득력을 잃는다.
물론 그가 경제적, 산업적 요인들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요인들이 1990년대 일본의 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개탄을 넘어서 유의미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되려면 그가 제시한 요소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만 문제점들을 병렬할 뿐이며, 그 문제점들은 여태껏 언론에서 숱하게 보도되어 왔던 것들이다. 뒤르켐과 마르크스, 파레토를 언급하면서 사회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작 언론과는 다르게 사회과학으로서 할 수 있는 분석은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성공과 몰락의 원인은 냉전체제에서 탈냉전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세계체계적 수준에서 이해되어야 옳다.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의 시장개방,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으로 누렸던 특수를 제하고서 일본의 전후부흥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그러한 '특수'들이 사라지고 다시 그런 계기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의 정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를 위한 해법인가 - 정치의 혁신과 동아시아 공동체
결국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혁신과 변화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역동성을 가지고 있느냐. 혁신을 할 만한 기력을 사회의 내부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이것은 '정치가'들의 일이다. 모리시마에 따르면 일본에 이런 '혁신'을 리드할 정치가는 없다. 때문에 모리시마는 ‘일본의 몰락’을 정치로부터의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정치적 '몰락‘이라는 덫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가 제안하는 '혁신안'은 동아시아 공동체다. 모리시마는 일본은 '정치철학의 결여'로 위기를 맞았다고 하며, 앞에서 주요 변동 원인으로 삼던 요인도 일본인들의 '질적 특성'이었다. 또한 그 자신은 "외생적 위기를 배제"했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위기의 타개책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국제적 해법이다. 원인은 국내적인데 해결방안은 국제적이다. 이는 내부의 위기를 외부로의 진출(혹은 팽창)으로 해결해왔던 과거 일본의 경로와 유사하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일본의 전과를 잘 알고 있는 동아시아인들에게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나가며
과학과 통념이 혼재하고, 전전 세대의 감수성과 전후 세대의 윤리관이 동거하는 이 책과 저자인 모리시마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일단은 1990년대라는 '시대'를 넘어설 수 없는 책이며, 주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 유행했던 '아시아적 가치'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모리시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풀리지 않은 채로 다시 우리 앞에 더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대지진과 원전 참사로 경제, 환경, 정서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모리시마가 지적하고 있는 '정치권의 무능'은 사고 시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 틈을 타 '하시모토 도루'라는 극우 정치인이 "혁신!"을 부르짖으며 한 앙케이트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중 3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와 일본의 정치, 경제적 정체 상태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 지점들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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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그리고 이번 겨울 학교 수업과 자캠 그리고 이런 저런 '좋은' 강의를 들으려 꽤나 품을 팔았다. 돌아보니 정리를 꼼꼼히 해놓은 몇 강의를 제외하고선 "아 참 좋은 강의였지"라는 인상만 기억에 남는다. 강의를 들으면서 할 수 있는 건 내가 읽고 이해한 것을 숙련된 독자들인 선생님들이 읽어낸 것과 대조, 점검해보고 내 이해가 막혔던 부분을 질문하는 일일 뿐, 결국 공부는 '내'가 한다. 강의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이미 잘 알고 있는데도 얇은 귀와 가벼운 엉덩이 탓에 헛걸음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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